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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역사

미국의 역사 열다섯번째

by 역사잘이 2024. 3. 2.

미국의 역사 열다섯번째 시작합니다.

미국의 역사 열다섯번째

 

이라크 침공

연방정부는 향후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미국 패트리어트 법은 정부의 통신 감시 권한을 증가시키고 연방 사법 기관과 정보 기관 간의 정보 교환에 대한 법적 제한을 없앴습니다. 테러 방지 활동을 지휘하고 조정하기 위해 미국 국토안보부는 연방정부가 창설되었습니다. 2002년 이후 미국 정부가 쿠바 관타나모 만의 미 해군기지 교도소인 관타나모 만 수용소에서 외국에서 붙잡힌 테러 용의자들을 무기한 구금한 것은 인권과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2003년 3월19일부터 5월1일까지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감행해 이라크 정부를 붕괴시키고 미국과 오랫동안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생포를 진행했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꼽은 침략의 이유로는 민주주의 확산,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등이 있습니다. 이라크 국민의 석방. 침공 초기 몇 가지 초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의 지속은 국제적인 항의에 기름을 부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침공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점차 국내에서의 지지가 줄어들었습니다. 2007년, 이라크 반란군에 의한 수년간의 폭력사태 이후 부시 대통령은 더 많은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사망자 수가 줄었지만 이라크의 정치적 안정은 여전히 불확실했습니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

2008년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전쟁의 인기와 2008년 금융위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또는 케냐계 최초의 다인종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당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바마는 당선 후 전투 작전이 종료되었다고 선언한 2010년 8월 31일까지 이라크 전쟁 노력을 마지못해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마지막 병력이 이라크를 떠난 2011년 12월 15일까지 이라크군을 돕고 철수군을 보호하며 테러에 맞서 싸우기 위해 5만 명의 미군과 군인들이 이라크에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오바마는 2014년 12월부터 병력 철수를 시작할 것을 제안하면서 3만 명의 병력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아프간 주둔 미군의 참여를 늘렸습니다. 2009년 그의 임기 둘째 날, 오바마는 2016년에 성문화된 금지령인 고문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오바마는 또한 해외에서 CIA가 관리하는 비밀 감옥의 폐쇄를 명령했습니다. 오바마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가능한 한 빨리 폐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수용소의 인구는 242명에서 45명으로 감소했고, 관타나모 검토 태스크 포스는 많은 수감자들이 석방되고 해외로 재배치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교도소를 완전히 폐쇄하려는 오바마의 노력은 2011년 오바마가 관타나모 수용소의 모든 수감자들을 미국 시설로 이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의회에 의해 방해를 받았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2011년 5월, 거의 10년간 숨어있던 알 카에다의 설립자이자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은 파키스탄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미 해군 특수부대의 공습으로 사망했습니다. 알 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붕괴 직전에 있는 동안 CIA가 드론을 이용해 지도자들을 추적했고 지도자를 제거하는 동안에도 예멘과 다른 외딴 지역에서 제휴 조직들은 계속해서 운영되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는 2013년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도중 압력솥 폭탄 2개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폭격에 이어 후속 총격 사건입니다. 폭탄들은 마라톤 결승선 근처에서 폭발하여 3명이 사망하고 약 264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라크 이슬람 국가와 레반트는 2014년 9월에 중요성을 갖게 되었습니다.IS는 이라크 서부와 시리아 동부의 대부분을 장악한 것 외에도 미국인 2명과 영국인 1명 등 3명의 기자를 참수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 지역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주요 군사 공세로 이어졌습니다. 2014년 12월 28일,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 임무를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2016년 말 대사관 경비원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미군의 철수를 약속했습니다. 이로써 미군의 임무는 2021년 8월 30일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대공황 침체기 시작

2008년 9월, 미국과 유럽 대부분은 흔히 "대공황"이라고 불리는 가장 긴 전후 침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부동산 시장 위기, 서브프라임 위기, 유가 급등, 자동차 산업 위기, 실업 증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위기가 겹쳤습니다. 금융위기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다른 거대 은행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자 2008년 9월 경제 전체의 안정을 위협했습니다. 10월부터 연방정부는 다수당에 의해 채택되고 부시가 서명한  교란 자산 구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금융 기관에 2450억 달러를 빌려주었습니다. 2008년 11월 선거에서 큰 표차로 승리한 후 부시의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는 2009년 미국의 경기회복 및 재투자법에 서명했는데 이는 경기가 침체에서 회복되도록 돕기 위한 787억 달러의 경기부양책이었습니다. 오바마는 부시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산업을 구하고 미래의 경제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는 특히 GM과 크라이슬러가 일시적으로 소유권을 정부에 넘겨주는 구제금융과 일시적으로 신차 판매를 활성화한 '캐시 포 클런커스'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경기 침체는 공식적으로 2009년 6월에 끝났고 경기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12월을 기점으로 실업률은 약 5%에서 10%의 최고치로 급격히 증가하다가 경기와 노동시장이 회복됨에 따라 하락하였습니다. 대공황 이후의 경제 팽창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고 고도 성장은 2019년 실업률을 50년 만에 최저치로 이끌었습니다.  경제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주거비, 보육비, 그리고 임금 인상을 초과한 고등 교육과 의료 서비스, 때로는 경제적 위기라고도 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2020년 초 미국을 강타한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한 극심한 경제 위축으로 경제 확장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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